문 닫힌 학교, 가정으로 떠넘겨진 역할
코로나19 시대, 부모의 역할 무엇인가

닫혀 있던 ‘학교 문’이 다시 열린다. 교육부는 2학기가 시작한 9월 6일부터 전면등교를 단계적으로 추진한다. 이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지역에선 전면등교가 가능해지고, 4단계 지역에선 학교별 3분의 2 이내로 등교할 수 있다. 교육부가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는 만큼, 방역 수칙을 준수한다면 안정적 대면 수업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결과다. 이런 결정을 바라보는 학생과 부모들의 마음은 ‘기대 반’ ‘불안 반’이다.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는다면 언제 또다시 ‘변수’가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학교 교육의 공백 속에서 자녀를 돌봐온 취약계층 부모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시스템은 불안정하고, 부모의 여력은 부족한데 자녀의 ‘학력 격차’뿐만 아니라 ‘정서적 어려움’까지 커지고 있어서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부모의 역할은 어떠해야 할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서울시 청소년상담복지센터와 함께 해답을 찾아봤다. 

코로나19로 인한 학업 성취도 저하 문제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로 인한 학업 성취도 저하 문제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처음엔 좋았어요. 그동안 맞벌이를 하느라 아이들을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는데, 재택근무를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게 괜찮다 싶었죠. 하지만 이젠 육아도 일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초등학교 1학년과 4학년 두 아들을 둔 이유정(43)씨는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고충이 더 커졌다고 토로했다. 학교 선생님이나 또래 친구의 역할을 메워줘야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서다.

이씨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다. 자녀를 종일 돌보는 전업주부부터 일과 양육을 병행하는 맞벌이 부모, 한부모 모두가 겪는 어려움이다. 특히 자녀와 부모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잦아진 ‘갈등’은 모두에게 상처를 남기고 있다.

전문가들이 “코로나19로 인한 학업 성취도 문제뿐만 아니라 심리사회적 발달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그동안 정부와 교육기관은 비대면 교육ㆍ온라인 등교 등을 통해 교육 중단을 막는 데 치중해 왔다. 반면 기존 ‘일상생활’의 틀을 벗어난 아이들의 심리적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그사이 아이들의 정신건강 위기는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이 9~24세 청소년 862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이후 1년 아동청소년 정신건강 변화’에 대해 조사(2021년 4월 기준)한 결과를 보자. 코로나19 이후 아동청소년이 겪는 가장 주된 감정은 ‘불안과 걱정(53.2%)’ ‘짜증(39.3%)’ ‘우울(30.2%)’ ‘두려움(18.5%)’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감사(4.8%)’ ‘평온(4.4%)’ ‘관심(3.6%)’ ‘침착함(3.1%)’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은 1년 전 동일 조사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하락했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은 ‘코로나19 이후 청소년 정신건강변화 기록’이란 보고서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강제적인 일상생활의 변화는 전방위적 스트레스원이다. 장기적인 스트레스와 무력감으로 인해 부정적인 감정이 아동청소년의 기본 정서가 돼 가고 있다.”

문제는 사회가 아이들의 ‘심리적 방역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서 그 역할이 고스란히 가정에 떠넘겨지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부모로선 아이들의 무너진 일상생활을 바로잡아주는 것조차 쉽지 않다. 

실제로 등교가 중단된 사이 많은 아이들의 생활 패턴이 크게 달라졌다. 아동청소년의 지난해 평균 수면시간(이하 만 4~19세 3375명·굿네이버스 기준)은 8.3시간으로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7.6시간 대비 늘어났다. 규칙적인 일상생활은 심리적 방역의 첫 단계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지난 5월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춘계학술대회에 참가한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신체활동이 줄고 수면시간이 불규칙해지는 등 생활리듬이 깨지면 장기적으로 아동청소년의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9월부터 초 ‧ 중 ‧ 고등학교 전면등교기 본격화했지만 코로나19 4차 유행이 지속하면서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다.[사진=뉴시스]
9월부터 초 ‧ 중 ‧ 고등학교 전면등교기 본격화했지만 코로나19 4차 유행이 지속하면서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다.[사진=뉴시스]

바깥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게임을 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소통할 시간이 줄어들자 인터넷 세계로 빠져든 셈이다. 굿네이버스 조사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중 코로나19 이후 스마트폰 사용시간이 늘어난 이들은 전체의 66.2%에 달했다.

이런 스마트폰 사용 증가가 미치는 영향은 단순하지 않다. ‘중독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어서다. 김현수 명지병원 교수(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춘계학술대회)의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아동청소년이 호소하는 심리적 부담과 트라우마는 ▲외로움ㆍ우울과 관련된 고립·단절 트라우마 ▲위생수칙ㆍ감염관리 관련 잔소리 트라우마 ▲혼공ㆍ혼밥ㆍ혼활 등 혼자 일상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생활 트라우마 ▲‘제대로 한 것이 없다’는 가족ㆍ사회로부터 결손 트라우마 ▲스마트폰 등 중독 관련 트라우마 등으로 나타났다. 

당연히 부모들의 걱정은 커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염려되는 마음에 쏟아낸 잔소리가 자녀와의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장시간 스마트폰 사용 문제’로 부모와의 갈등을 경험한 아동의 비율은 47.6%(이하 굿네이버스 조사)에 달했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생(59.9%), 중학생(58.4%), 초등학교 저학년생(47.3%)의 비중이 높았다. 

홀로 4학년 아들을 키우는 여현주(41)씨는 이렇게 토로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이가 늘 스마트폰을 하고 있다.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얘기를 해도 제대로 듣지 않는다. 잔소리를 하다하다 결국 소리를 지르게 되더라. 혼자 노는 게 안쓰러우면서도 감정이 자제가 되지 않는다.” 

 

여씨처럼 자녀에게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는 취약계층 부모들의 고민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일하는 시간에 자녀를 돌보는 시간까지 더해져 육체적·정신적 부담이 누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녀에게 잔소리하거나 화를 내는 빈도가 잦아지면서 아이는 아이대로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 아이로선 쌓인 감정을 털어놓을 데가 마땅치 않고, 부모는 다시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서울대 국제이주와포용센터ㆍ한국갤럽이 실시한 ‘코로나19와 양육’ 관련 조사(이하 만 0~12세 자녀를 둔 부모 대상ㆍ2021년 3월 기준) 결과는 이같은 세태를 잘 보여준다. “일과 육아의 병행이 너무 힘들다”고 답한 엄마는 전체의 84.2%(아빠 70.7%), “자녀에게 충분히 신경 쓰지 못해 미안하다”는 엄마는 78.1%(아빠 70.0%)에 달했다. 일과 양육이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면서 불안감을 느끼는 부모도 숱했다. “소득이 줄거나 일자리를 잃을까봐 걱정된다”고 답한 엄마가 61.9%(아빠 57.9%)나 됐다. 

물론 심리적 방역 시스템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각계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NGO 단체 등이 ‘멘토링’을 통해 아이들의 기댈 곳이 돼주기도 한다. 하지만 자녀와 가장 가까운 부모가 중심을 잡고 역할을 하는 게 ‘기본 조건’이다. 

그런 면에서 부모가 먼저 스스로를 돌볼 필요가 있다. 2년 가까이 이어진 ‘자녀 돌봄’은 부모의 신체ㆍ정신 건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국제이주와포용센터ㆍ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자녀 돌봄으로 인해 ‘평소보다 우울하다’ ‘평소보다 피곤하다’ ‘어디서도 도움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든다’ ‘건강이 나빠졌다’고 답한 엄마는 각각 56.4%, 78.7%, 54.5%, 41.9%에 달했다.

 

행복하지 않은 부모에게서 자란 아이가 행복하기 어렵다. 서울시 청소년상담복지센터(이하 센터)가 아동청소년뿐만 아니라 부모를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97년 전문상담기관으로 개원한 센터는 다양한 상담 활동을 이어왔다.

열악한 가정환경에 놓인 청소년부터, 학교 부적응 청소년, 인터넷 중독 청소년, 은둔형 외톨이 청소년, 학업 중단 청소년, 느린학습자(경계선 지능인) 등 여러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왔다. 아울러 다양한 자녀를 둔 부모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올바른 양육 방향을 제시해 왔다. 유례없는 코로나19 국면에선 1388전화상담, 사이버상담, 채팅상담을 통해 ‘정서적 사각지대’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혜진 서울시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은 “코로나19가 2년 가까이 지속된 지금은 아동청소년과 부모 모두에게 전문적 상담이 필요한 시기다”면서 “우울감과 무력감을 호소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부모가 올바른 방식으로 어루만져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와 교육 사각지대’ 열한번째 편에선 ‘코로나19 시대에 필요한 부모의 역할’을 알아보기로 하자.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 이 콘텐츠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 받아 제작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