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가출한 아이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간 대다수의 청소년이 또다시 집을 나온다. 그들이 가출할 수밖에 없던 원인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가출 청소년’ 대신 ‘가정 밖 청소년’이란 명칭을 쓰려는 움직임은 긍정적이다. 아울러 청소년들이 생각하는 ‘우리집’이 과연 생물학적 의미인지도 되짚어봐야 한다.
‘가출家出’. 글자 그대로 집을 나온 상황을 의미한다. 청소년 가출의 정의는 좀 더 구체적이다. 여성가족부는 가출을 ‘부모나 보호자의 동의 없이 하루 이상 무단으로 집에 들어가지 않은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청소년 전문가들은 이같은 가출의 정의가 자칫 청소년 가출 문제의 초점을 흐려놓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아이들이 왜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가정 복귀’에만 초점을 맞출 수 있다는 거다.
실제로 가출한 아이들에겐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가정폭력을 견디기 어려워서’ ‘가정 내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가족이 와해돼서’ 집을 나온 경우가 많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사례를 들어 살펴보자.
필자가 만난 17세 청소년 A는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피해 가출했다. 어머니마저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가 연락이 두절됐다. 가출한 지 3년이 됐지만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순 없는 상황이다. 15세 청소년 B는 게임과 흡연 문제로 부모님과 갈등을 빚다 결국 가출했다. 어느샌가 부모님도 B를 찾지 않게 됐고, B 역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16세 청소년 C는 폭력적인 오빠를 피해 집을 나왔다. C의 오빠는 화가 나면 C는 물론 부모님에게까지 욕설을 하고 물건을 부쉈다. 오빠가 무섭지만 부모님은 되레 C에게 오빠를 이해하라고 강요했다. 부모님에게 화가 난 C는 결국 집을 나왔다.
이런 아이들을 집에 돌려보내는 것만이 능사일까. 여성가족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출 청소년 지원시설인 ‘쉼터’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청소년 중 가정 복귀 가능성이 높은 아이들은 10명 중 4명이 채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가정에 복귀했다가 또다시 가출하는 악순환을 겪는 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래서 필자는 청소년 가출 문제를 ‘가정 복귀’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다양한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국가권익위원회가 2017년부터 ‘가출 청소년’ 대신 ‘가정 밖 청소년’으로 부를 것을 권고해온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지난 2월에는 가출 청소년의 법률적 용어를 가정 밖 청소년으로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한 ‘청소년복지지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런 관점의 변화는 중요하다. 청소년들이 가정을 벗어날 수밖에 없던 이유에 주목하고, 경우에 따라 가정 밖에서 그들을 보호하고 지원할 방안을 모색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서울시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는 청소년 ‘일시보호소’가 있다. 가출한 청소년들이 직접 찾아오기도 하고, 경찰이 보호를 의뢰한 아이들이 입소하기도 한다. 경찰이 보호를 의뢰한 경우는 대부분 가정폭력이나 학대가 의심되는 경우다.
우리 센터는 일시보호소다 보니 대부분 아이들이 하루 정도 머물고 떠난다. 이후엔 중단기 센터에 입소하거나 가정으로 돌아간다. 단 하루뿐이지만 센터 직원들은 아이들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심신의 안정을 회복하고, 원활하게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센터 직원들의 마음이 전해져서일까. 아이들은 일시보호소에 ‘우리집’이란 이름을 붙여줬다.
필자는 아이들이 왜 우리집이란 이름을 붙여줬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일시보호소에서 하룻밤을 묵고 떠나는 아이들은 선생님들에게 “갈게요”라고 인사한다. 선생님들은 “잘지내”라고 답한다. 아마도 아이들은 그 순간에도 각자의 집에서 부모님과 “다녀올게요” “잘 다녀와”라는 인사를 나누고 싶지 않았을까. 그런 소망을 담아 일시보호소에 우리집이란 이름을 붙여준 건 아닐까. 따뜻한 인사를 주고받는 평범한 일상이 그들에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이 마음 아프다.
실제로 가출한 아이들도 ‘울타리’를 갈구한다. 가출한 청소년이 모여 사는 것을 흔히 ‘가출팸’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팸(fam)’은 ‘가족(family)’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가출 전 SNS 등을 통해 가출팸을 찾기도 하고, 왕따나 가정폭력으로 방황하다 가출팸을 만나 함께 어울리기도 한다.
물론 가출팸이 결코 긍정적인 의미의 가족이 될 순 없다. 가출팸으로 만난 아이들과 범법행위를 저질러 보호관찰을 받게 되거나 소년원에 가는 경우가 숱하다. 2019년엔 가출팸 생활을 하던 청소년 사이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가출팸을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이 많은 건 당연하다. 그럼에도 주목할 건 있다. 가정 밖 청소년들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크든 작든 집단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들의 마음속에 안전하고 따뜻한 가족을 갖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아이는 가족이란 울타리를 원한다. 하지만 어떤 아이들에겐 가정의 안팎이 모두 위험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는 가족의 의미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정 밖 청소년들이 원하는 ‘우리집’은 반드시 생물학적 의미의 가족이 함께 사는 곳은 아닐 것이다.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고 사랑과 이해를 느낄 수 있는 곳일 것이다. 가정 밖 청소년들을 폭력과 방치로 생존의 위협을 받는 가정으로 돌아가라고 할 수는 없다. 가정 밖 청소년들이 가정 밖에서도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몫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출 청소년 대신 가정 밖 청소년이란 용어를 채택한 건 의미 있는 변화다. 이제 우리가 가정 밖 청소년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을 거둘 때다.
글 : 유혜진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